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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의 구마모토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사망자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세계가 걱정하는 가운데 중국의 일부 기업에서는 공개적으로 구마모토현의 지진을 축하하기 위한 가격세일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뉴스를 보면서 반일 감정이 지나치게 심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우리나라 역사가 아닌 중국의 역사를 되짚어 보니 분노의 대상이 어긋나고 잘못되기는 했지만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일본을 이토록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MBC 다큐 스페셜에서 중국 시민들에게 당신의 마음속 한국과 일본은 어떤 모습인가요? 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한국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일본은 싫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중국이 이토록 일본을 싫어하게된 이유중 가장 결정적인 난징 대학살 사건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난징의 눈물


1937년 7월 7일 일본군의 자작극으로 벌어진 루거우차오 사건을 통해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은 빠른 속도로 중국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며 진격을 거듭하게 된다. 12월 10일 빠르게 난징을 포위한 일본군은 투항을 경고하지만 중국의 지휘관 탕셩즈는 결사항전을 주장하며 싸우기 시작했는데 3일만에 방어선이 뚫리고 1937년 12월 17일 일본군은 난징에 입성하게 된다. 그 당시 난징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미쳐 피난을 못간 병사들과 50~60만명의 시민들로 난징이 함락되기 하루전 탕셩즈는 자신의 부대와 양쯔강을 건너서 도망갔다고 알려져 있다.




무차별 학살


난징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패잔병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항복을 선언한 중국군 포로뿐만 아니라 젊은 남자들을 모두 성외각이나 양쯔강 하구에서 학살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기관총을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총알이 아깝다는 이유로 사람을 상대로 총검술 훈련을 하거나 목 베기 시합을 했다고 한다. 그중에 무카이 도시아키, 노다 쓰요시는 스포츠 시합을 하듯이 100명의 목을 누가 빨리 베는가 경쟁을 하고 내용을 대서특필 했다고 하는데 사진에 나오는 자들은 전후에 전범으로 기소되어 사형당했다.




남겨진 여자들...


남자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여자들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한꼴을 당했해야만 했다. 여성들은 일본군의 성 노리개로 전락했고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도망가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전후 재판에 따르면 약 2,000명 정도의 여성이 강간당했다고 말하지만 현재는 그 숫자가 8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내용이 잔인해서 모두 쓰지는 못하지만 그전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과 비슷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이러한 광기어린 행각은 6주동안 이어졌고 1938년 봄이되서야 대학살은 종결되었다. 난징 대학살로 인한 희생자 숫자는 학자에 따라서 의견이 달라지는데 중국은 30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일본은 20만명 정도라는 주장을 하고있다. 그 당시 난징에서 사망자들이 흘린 피를 합하면 1,200톤에 이르고 그 시체를 포개어 놓으면 74층 높이의 빌딩에 달할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니 얼마나 잔인하고 비상식적으로 일방적인 학살을 자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진실을 외치다.


중국계 미국인 2세 아이리스 장은 <난징의 강간, 그 진실의 기록> 이라는 책을 통해서 난징 대학살 사건의 사실들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 후 일본 극우의 표적이 되었으며 많은 협박과 위협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다가 2004년 11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일본 우익들은 이 사실을 부정하고 그녀가 자살한건 자신들의 협박이 아니라 스스로 거짓말을 꾸며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라고 말하고있으며 아직까지 인정하는 사람들과 부정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잘못을 되풀이 하기 때문에 일본은 지난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과거의 잘못으로 일본시민 모두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우리나라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 할머니께서 별세하시면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40명으로 줄어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실제로 그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아도 우리는 잊지않고 그들의 사과를 받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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