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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민간인 출입금지! 공포의 핵실험 장소 TOP 3

스마트한 순대 2016. 9. 13. 02:49

최근 북한의 6차 핵실험 · ICBM 발사 등의 추가적인 도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핵폭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핵실험의 경우 모니터링을 계속 하고있지만 방사능 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나중에 피폭의 위험은 없는지 걱정이 되네요. 이번 시간에는 미국과 소련, 영국이 원자폭탄 핵실험을 진행하던 유명한 장소 3곳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수십년이 지나도 방사능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핵폭탄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한번 깨닿게 되네요.




1. 네바다 핵실험장

원자력 협정을 통해 미국과 영국이 공동으로 핵실험을 하던 장소로 서울의 5배가 넘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1951년부터 마셜군도나 크리스마스 섬 등의 변방지역을 제외한 모든 핵실험이 여기서 진행 되었으며 당시 핵실험장을 보조하기 위한 비밀도시 머큐리도 존재했지만 현재는 임계 핵실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령화 된 상태입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분화구 (크레이터)가 많이 존재하는 네바다 핵실험장에서는 1951년부터 1992년까지 총 928회의 핵실험을 진행하고 지하 핵실험은 828번 실행했다고 하지만 실제 실험한 횟수는 1천회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발생한 버섯 구름은 160km 떨어진 거리에서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신기하다고 구경하려는 관광객이 많았다고 하네요.




1992년 이후 부터는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더이상의 임계 핵실험을 진행하지 않게 되었지만 네바다 핵실험장 안에는 20년 정도의 반감기를 가지고 있는 방사성 폐기물이 존재하고 EPA 연구용 농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방사능 피폭을 경험해보고싶지 않다면 근처에 가지 않는것이 좋습니다.




2. 비키니섬


1946년 7월 1일 미국은 비키니 환초로 알려진 태평양의 마셜제도의 해역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공개 핵실험을 감행하게 됩니다. 원래 비키니 섬은 환상적인 풍경으로 유명한 휴양지가 될 수 있었지만 미국이 핵실험을 위해 에니웨톡 섬의 주민들을 강제로 몰아낸 다음 1946년 7월부터 1958년까지 모두 23회의 핵실험을 진행하면서 섬의 운명은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그중 1954년에 진행한 수소폭탄(캐슬브라고) 실험으로 섬 3개가 통째로 증발해서 사라졌으며 원래 섬에서 살던 원주민들은 30여년만인 1974년에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방사능이 기준치 이상으로 확인되서 4년만에 비키니 원주민들은 다시 섬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15년 안에 비키니 섬을 정화시켜주기로 약속하고 1억 5,000만 달러의 위탁기금을 제공하게 됩니다.




나중에 확인된 내용에 따르면 캐슬브라고 실험의 폭심지에서 16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조헙하던 일본 어선 후쿠류마루가 휘말려 선원 23명이 방사능 피폭을 당했으며 총 13명이 방사능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합니다. 30년이 지난 1997년 비키니 섬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지만 아직까지 과일은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3. 세미팔라틴스크


지금은 카자흐스탄 주에 위치한 도시로 쿠르차토프(Курчатов)로 부르고 있지만 소련 시절에는 세미팔라틴스크-16 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비밀도시 였습니다. 소련의 핵개발을 처음으로 시작한 물리학자인 이고르 쿠르차토프의 이름을 따온 이 도시는 현재 카자흐스탄 원자력 에너지 협회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하면서 세미팔라틴스크는 최전선이 되는데 소련은 1949년 8월부터 약 456회의 핵실험을 이곳에서 진행했으며 1990년 까지도 핵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핵실험으로 인한 차간(Lake Chagan) 이라는 인공호수도 존재하는데 지금도 고농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상태로 2006년에 측정한 결과 위험 판정을 받았습니다.




456회의 핵실험을 자행한 결과 카자흐스탄 주민 뿐만 아니라 동쪽으로 150km 떨어진 세메이시 주민들도 방사능 낙진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받았으며 사망자는 5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이곳의 끔직한 현실을 알게었고 반대 시위를 통해 1991년 8월 29일 핵실험을 중단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암 환자와 기형아 출산등의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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