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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정권시절 제4공화국에서 5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만들어진 곳으로 원래의 취지는 조직폭력배나 범죄자 같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평범한 사람으로 교화시키기 위한 명목의 군대식 기관으로 설립했지만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들 중에는 정권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당시에 시행하던 통금시간을 어긴 사람들, 중, 고등학생 심지어 정신지체 장애인도 포함될 정도로 마구잡이 식으로 끌고갔는데 순화교육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삼청교육대 안에서는 욕설뿐만 아니라 가혹할 정도의 훈련과 폭력 난무했다고 합니다.



징집 대상자들


1. 조직폭력배

2. 도둑, 강도

3. 불온선동자

4. 전두환 비방자

5. 5,18 유언비어 유포자

6. 윤락가 종사자




얼마나 끌려갔나?


해당 작전은 대외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전에 전과가 있거나 폭력배 명단을 조사한뒤 진행 되었는데 처음 목표 인원은 20,022명으로 정해졌지만 파출소와 경창서들간의 경쟁이 붙는 바람에 나중에는 영장 없이 마구잡이 식으로 검거가 진행되면서 총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검거하게 되었습니다. 징집된 사람들 모두 전과에 비례하여 A, B, C, D 등급으로 분류되어 교육을 받았으며 전과가 없는 무고한 시민들은 36%에 달했다고 합니다.




삼청교육대 가혹행위


당시 삼청교육대에서 행해진 가혹행위는 상당히 잔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이나 신체적인 능력과 상관없이 훈련을 진행했으며 도중에 반항하거나 뒤떨어 지는 사람의 경우 얼차려 뿐만 아니라 몽둥이로 구타하거나 물고문을 받고 태도가 불량하거나 지시를 불이행 하는 사람들은 별도로 설치된 특수교육대에 끌려가서 혹독한 교육을 받았는데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때려도 문제가 없는 힘없는 사람들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효과는 어땟을까?


일반적인 훈련이나 순화교육이 아닌 사회에 필요한 인간을 만든다는 명목아래 행해진 얼차려와 폭력을 받았던 사람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되었는데 아직도 많은 피해자들이 정신 질환을 앓고있으며 제5공화국이 끝난 시점에서도 죄를지은 사람중에 혹시나 삼청교육대로 끌려갈까봐 목숨을 버린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범죄자들은 경찰과 연줄을 통해서 잠시 움추린 상태로 대기하고 잠잠해 지는 시점에서 다시 활동했다고 합니다.




엇갈리는 사망자


1988년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훈련중에 사망한 사람들은 총 57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397명 정신장애나 상해를 입은 사람들은 2,680명 이라고 하는데 건장한 청년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 여성, 장애인, 50대 이상의 어르신도 끌려왔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4만명에 달하는 삼청교육대 이수자들의 명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에따른 보상은?


삼청교육대 관련하여 노태우 정부는 이에 대한 보상 뿐만 아니라 명예회복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고 뒤늦게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했지만 삼청교육대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은폐되거나 페기된 상태 인데다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되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노무현 정부때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는데 2015년 6월30일 부로 법적인 효력이 종료되서 이제는 진상규명이 불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들은 1990년 초반까지 주민등록 등본에 삼청교육 순화교육 이수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취업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했습니다. 가끔 기성세대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삼청교육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그 실체를 모르고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실제로 삼청교육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어지고 자료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을텐데 지금 삼청교육대라는 단어를 알고있는 분들은 제대로된 정보를 기억하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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