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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를 꼽으라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뺏고 빼앗기는 백마고지 전투와 국군의 피와 죽음으로 승리한 다부동 전투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제6보병사단의 춘천, 홍천 전투는 북한이 단기간 내에 남한을 점령하는데 실패하게 만들었으며 UN 연합군이 국내에 진입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방어선 역할뿐만 아니라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인민군은 이 전투를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에 작전에 큰 차질을 빚었으며 인민군 2사단은 국군 6사단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해서 서울 동남방 진출이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춘천에서 약 3일간 진행된 전투는 인민군에게 많은 악영향을 끼쳤는데 서울을 점령했지만 3일 동안 한강을 도하하지 못해서 국군을 섬멸할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6.25 전쟁이 발발할 당시 북한의 김일성은 전쟁이 장기화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미군의 전력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개전과 동시에 육군 주력 사단을 내려보내서 한국의 육군 4개 사단을 서울에서 빠르게 밀어낸 다음 춘천으로 해군과 육전대 등을 우회시켜서 국군을 포위하고 섬멸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여기에는 북한과 소련이 생각하는 2가지 작전이 있었는데 두 계획의 요지는 3일 안으로 서울을 점령한 다음 춘천-홍천 지역을 우회해서 한국의 주력 사단을 섬멸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춘천에 있는 6사단을 섬멸하기 위해서 북한은 2개 사단뿐만 아니라 예비 사단까지 동원하며 두 배 이상의 병력을 동원하며 국군 6사단을 섬멸하려고 한다.




인민군 육군 2사단은 강원도 춘천과 경기도 가평을 경유하면서 서울 동남 위 방향으로 진출을 시도하였는데 그 이유는 북한의 주공에 밀려서 내려온 국군 사단의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해서 섬멸하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민군 12사단은 춘천에서 방어하고 있는 국군 6사단 7연대의 퇴로를 차단하였으며 이후 홍천 지역을 지나서 대전을 점령한 이후 대구 지역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인민군이 생각한 대로 전투는 진행되지 않았다. 춘천을 방어하던 6사단 7연대는 북한의 2사단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으며 소양강을 도하해서 공격을 하려던 적을 상대로 오히려 역으로 기습했고 전의 진격로를 예측한 6사단 포병대대의 화력 지원으로 북한 6연대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었다. 당시 포병대대의 무기는 사정거리가 10km도 안되는 105mm M3 견인 곡사포 13문이 전부였지만 춘천과 인제를 이동하며 화력 지원을 하게 된다.


인민군은 퇴로를 막은 다음 공격을 해서 국군을 괴멸 시키려고 했지만 춘천 전투에서 오히려 북한군 2개 사단이 전투력 40%를 상실하며 실질적으로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북한의 6.25 기습으로 서울이 빠르게 함락되기는 했지만 6사단이 적의 핵심 진격로였던 춘천을 완벽하게 방어하고 오히려 전멸에 가까운 성과를 얻었기 때문에 북한군이 머뭇거리는 동안 한국 이북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은 한강을 도하해서 한강 이남에 재편성됨으로 전투력을 보존할 수 있었으며 부산 축선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벌면서 오히려 북으로 전진하며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6사단 춘천 전투가 없었다면 6.25전쟁은 한국군의 괴멸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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