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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간첩신고 포상금 과거와 현재

스마트한 순대 2016. 9. 8. 07:00

군대에 입대하고 최전방에서 근무한 장병들은 다들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간첩을 잡으면 바로 전역 할 수 있을까? 글쓴이가 알기로는 사실상 전역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의 휴가를 받는다고 한다. 이번 시간에는 그동안 간첩을 신고하고 포상을 받았던 사람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967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살고있는 이상근(52) 씨는 집 근처에서 배회하고 있는 무장공비를 집으로 유인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끌고 아내에게는 당시 7789 수색중대로 연락하라고 이야기 하여 공비 2명을 사살했던 일이 있었다.


이에 3군단 군단장 박춘식은 보상으로 14평 기와집과 닭장, 외양간, 식기와 장농과 양복장과 같은 가구 50점 뿐만 아니라 송아지 2마리, 돼지 2마리 토끼 10마리, 탈곡기를 선물했다고 하는데 왠지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보상이다.




1980년 3월 23일


진눈깨비가 내리는 새벽 2시50분 황중해 일병과 김범규 이병은 한강에서 철책 근무를 서고 있었다. 10분만 더 지나가면 근무 교대가 이루어질 시점에 황일병은 멀리서 움직이는 두개의 물체를 포착하게 되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었다. 이에 무장공비라는 사실을 직감안 황중해 일병은 김범규 이병에게 초소에 연락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무장공비를 향해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몸을 숨기고 반격하던 적들은 곧이어 투입된 20여명의 소대원의 집중 사격을 받아서 3명 모두 현장에서 사살 되었으며 그들이 사용하던 무기를 노획할 수 있었다. 이에 처음 현장에 있었던 두명의 병사는 충무무공훈장과 손목시계, 상금 1,613만원을 받았으며 헬기를 태워서 휴가를 보내줬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적은 금액 같지만 그 당시 31평 대치동 아파트의 분양가가 1,847만원 이었다고 한다.




1980년 3월 27일


15사단 중동부 전선에 3인조 무장공비가 침투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중 한명은 총을맞고 사살 되었으며 2명은 북쪽으로 도주하게 된다. 이에 전사한 김윤길 상병에게는 600만원의 보상금이 유족에게 전달 되었으며 무장공비를 사살한 한영근 상병은 충무무공훈장과 보상금 900만원을 수여받게 된다.




1980년 5월 23일


새벽 5시 서울역 앞에있는 여관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두명의 여성은 1시간 넘게 역 주변을 서성거리던 남성이 행인에게 길을 알려주겠다며 동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 수상하게 여기던 두 사람은 근처에 있던 경찰관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되고 경찰이 그에게 다가가서 신분 확인을 하자 그는 독침을 쏘면서 저항했는데 나중에는 간첩으로 확인이 되었다.


덕분에 이 여성들은 포상금으로 5,050만원을 받게 되었다. 당시 법적으로 정해진 포상금은 3천만원 이었지만 5월이 간첩 자수 기간이었기 때문에 2천만원을 추가로 받았으며 간첩이 소지하고 있던 현금 (193만 5천원)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금 50만원 까지 더해졌다. 그 당시 순경 초임이 수당을 다 합친 월급이 8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1980년 6월 20일


당시 대천 앞바다에서 어선으로 가장한 배에는 무장간첩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를 본 해저호 선원들은 이 사실을 신속히 신고하여 12명의 선원은 572만 6천원의 상금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 도망가는 간첩선의 퇴로를 발견한 용현호의 선원 3명에게는 88만 1,250원이 포상으로 지급되었다.


간첩을 신고한 어부들은 포상식 이후 민간으로서는 처음으로 군장성들과 함께 지프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하게 되었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1시 25분 강릉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이진규(38) 씨는 해안도로를 달리던 도중 희미한 불빛을 내고있는 돌고래 모양의 물체를 목격하게 된다. 왠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그는 차를 세우고 해안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는데 시커먼 물체 안에서 남자의 비명소리를 듣게되고 빠르게 뛰어가서 파출소에 이 사실을 알리게 된다.


검은색 물체는 잠수함으로 26명의 무장간첩이 타고 있었고 49일동안 소탕작전이 벌어졌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최초로 신고했던 택시기사는 포상금으로 9,450만원의 포상금을 받게된다.




1995년 간첩을 잡으면 1억원, 간첩선을 신고하면 1억5000만원으로 상향된 뒤16년 동안 변하지 않았지만 2011년 부터 간첩 한명은 최대 5억원 간첩선의 경우 최대 7억5000만원으로 보상금이 인상됐다. 포상금을 받고는 싶지만 하루빨리 간첩 신고가 필요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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